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
콜롬비아의 축구 국가대표팀.
홈 구장으로는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를 주로 사용하며, 감독은 카를로스 케이로스이다. 커피 재배자들(Los Cafeteros)[2]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해서 남미의 축구강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유니폼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다.
2. 특징
1946년과 1970년에 중앙 아메리카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월드컵 예선에는 1958년에 처음 참가하였으나, 이 당시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하였다. 예선에서 보고타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겼으나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패배하였다. 파라과이와는 홈 경기에서 3-2로 패배, 원정에서 3-0으로 패배하여 승점 1점으로 월드컵 예선 남미 3조 꼴지를 차지하였다. 월드컵 최고성적은 2014년의 8강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월드컵 참가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올랐다. 1994년 월드컵때는 펠레로부터 우승후보로까지 평가받았으나[3] 조별예선 미국전에서 당시 국가대표로 출전한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선수가 경기중 자책골을 넣어 패했고, 결국 1승 2패로 1라운드 탈락. 당시 국대 감독 프란시스코 마투라나[4][5] 는 다른 나라로 아예 이민가버렸으며, 에스코바르는 귀국 후 분노한 극성팬에 의해 총격을 받아 27살 젊은 나이로 숨진 일이 있다. 그런데, 극성팬이 아닌 도박에 연루된 갱단의 청부살해라는 주장도 신빙성을 얻고 있다. 참고로 범인인 무뇨스 카스트로는 1994년 징역형을 받았다가 2005년 11년만에 석방되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본선 진출엔 성공했으나 여기서도 1승 2패로 탈락. 이후 한동안 본선 진출을 못하다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아르헨티나에 이어 예선 2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이 대회부터 피파랭킹으로만 톱시드를 매기는 것으로 변경된 덕에 얼떨결에 톱시드까지 다 부여받게 되었다.
유명한 선수로는 국내팬들에게 라리가 인간계 최고 골잡이라고 불렸던 라다멜 팔카오. 그러나 팔카오는 부상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막상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팔카오의 공백이 무색하게 하메스 로드리게스란 또다른 특급 에이스가 팀을 이끌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선 그리스를 가볍게 3 : 0으로 떡실신시켰고, 2차전에선 디디에 드로그바가 이끄는 코트디부아르를 접전 끝에 2 : 1로 제압하며 일찌감치 16강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에선 1.5군을 내보낸데다 경기 막판에는 골키퍼 다비드 오스피나를 불러들이고 만 43세의 파리드 몬드라곤으로 교체 투입하는 여유를 부리고도 4 : 1 대승을 거두었다. 이어서 16강에선 역시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혔던 우루과이를 2 : 0으로 꺾고 최초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 홈팀 브라질에게 1 : 2로 패했지만 콜롬비아 월드컵 도전사에서 가장 좋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골을 넣을 때마다 선수들이 단체로 흥겨운 댄스 셀레브레이션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6]
하지만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브라질 월드컵에서와는 달리 전력이 약간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선 지난 대회에서 4 : 1 대승을 거둔 일본과 조별리그 1차전에서부터 재회했는데, 이번엔 경기 시작 3분만에 어느 멍청한 수비수가 페널티에어리어에서 핸드볼 파울을 범해 퇴장당하면서 무려 87분 동안 10명이 뛰는 수적 열세를 안게 되었고 결국 1 : 2로 패배해 불안한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전에서 폴란드를 3 : 0으로 대파하고, 3차전에서 세네갈을 1 : 0으로 꺾어 2승 1패로 조 1위를 차지해 2개 대회 연속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선 잉글랜드와 1 : 1로 비긴 뒤 승부차기까지 갔으나, 그만 패배하며 잉글랜드의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승부차기 승리를 안겨주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흥겨운 댄스 셀레브레이션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지난 대회와 달리 비매너 플레이와 선수 살해 협박에 살벌한 팬덤 등 부정적인 이미지만 잔뜩 남았다.
대개 남미 팀들은 대한민국에 매우 강한 편이다.[7] 한국이 남미팀을 상대로 총 11승 10무 18패를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콜롬비아만큼은 한국과 상성이 별로 좋지 못하다.[8] 둘의 전력을 비교해 보면 콜롬비아가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막상 둘의 전적을 비교하면 '''오히려 1승 2무 4패로 콜롬비아가 열세'''다. 두 팀의 첫 대결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을 4개월 정도 앞둔 2월 26일에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치른 평가전이었는데 그 경기에서 2 : 2로 비겼다.[9] 그리고 이듬해 1월 31일에 영국령 홍콩에서 치른 칼스버그컵 준결승전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 때 최용수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 : 1로 패했다.[10] 그리고 또 이듬해 11월 23일에 수원에서 치른 친선경기에서 '''1 : 4'''로 대패를 당했다.[11] 그리고 2003년 3월 29일, 한국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데뷔전으로 부산에서 치른 친선경기에서는 0 : 0으로 비겼다. 2년 후 2005년 1월 15일, 다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치른 친선경기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2 : 1 승리를 거뒀다.[12] 그리고 12년 동안 맞대결이 없다가 2017년 11월 10일에 수원에서 평가전을 치렀는데 이 때 손흥민에게 멀티골을 내주며 1 : 2로 패배했다.[13] 2019년 3월 26일 상암구장에서 펼쳐진 친선 경기에서도 1 : 2로 패배하며 한국전 2연패를 기록했다.[14] 한편 콜롬비아 선수들의 비매너 반칙과 라다멜 팔카오의 '''의료키트 던지기 신공'''(...)으로 2년전에 이어 또 콜롬비아 선수들의 인성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더불어 콜롬비아 언론은 경기 중에 손흥민이 콜롬비아 선수들이 말이 많다는 식으로 제스처를 취한 것을 두고 카르도나도 같은 행위(...)로 퇴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적반하장적 태도로 비난을 사고 있다. 이 경기 역시 매너도 성적도 모두 패한 경기.
대한민국 대표팀은 여지껏 남미 팀을 상대로 치른 A매치에서 총 11승을 올렸는데[15] , 이 이긴 11경기 대부분은 한국 홈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원정에서도 한국에 승리를 헌납한 팀은 콜롬비아가 유일하다.[16] 대한민국을 상대로 A매치에서 4번씩이나 패배당한 남미 팀으로 봐도 콜롬비아가 유일하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전용 승리 자판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게다가 요상하게도 한국을 만나면 경기력이 썩 좋지 못하다. 본인들도 이걸 아는지 한국전만 하면 지다가 멘탈이 터져서 온갖 인성 논란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콜롬비아의 인상은 '''한국의 밥(...)+비매너'''. 이로 인해 안 그래도 최근 야유가 심해지고 있는 한국 국대 경기에서 콜롬비아는 특히나 더 심한 야유를 받고, 월드컵이나 친선전에서 콜롬비아가 경기만 하면 "콜롬비아 인성 수준..."이라는 댓글이 베댓을 수시로 먹으며, "다시는 쟤들과 친선전 잡지 마라"라는 댓글도 자주 보인다.
양봉업자, 옐로우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손흥민이 콜롬비아에 특히 강하다. 콜롬비아를 상대로 2경기 3골을 기록해 한국 선수로서 황선홍과 함께 최다 득점을 기록 중이다.
3. 역대 감독
ㅇㄱㅁㄸ== 현재 선수명단 ==
ㅇㄱㅁㄸ
4.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5. 역대 전적
5.1. FIFA 월드컵
'''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25위'''
총성적 '''9승 3무 10패, 32득점 30실점'''에 '''승점 30점'''으로 월드컵 랭킹 '''25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4년 대회의 선전으로 월드컵 랭킹 28위로 수직상승했고, 2018년 대회에서도 16강에 오르면서 승점 7점을 더 추가해 세 계단이 더 상승했다. 북중미의 미국과 승점이 같으나 평균 점수[24] 에서 콜롬비아 1.36(승점 30점 / 22경기), 미국 0.91(승점 30점 / 33경기)로 앞선다.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는 우리나라와 승점이 단 1점차까지 따라붙었으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승점 3점, 콜롬비아가 승점 7점을 획득하여 결국 한국을 역전하였고, 그밖에 루마니아, 미국의 순위를 같이 따라잡았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브라질 1패(2014), 독일 1무(1990), 잉글랜드 1무 1패(1998, 2018), 우루과이 1승 1패(1962, 2014), 러시아 1무(1962), 세르비아 2패(1962, 1990), 폴란드 1승(2018), 스위스 1승(1994), 미국 1패(1994), 루마니아 2패(1994, 1998), 일본 1승 1패(2014, 2018), 카메룬 1패(1990), 세네갈 1승(2018), 코트디부아르 1승(2014), 튀니지 1승(1998), 그리스 1승(2014), 아랍에미리트 1승(1990)을 기록하고 있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유럽 3승 3무 5패, 남미 1승 2패, 북중미 1패, 아프리카 3승 1패, 아시아 2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콜롬비아에 패배를 안긴 국가는 '''세르비아(2패), 루마니아(2패), 우루과이(1패), 카메룬(1패), 미국(1패), 잉글랜드(1패), 브라질(1패), 일본(1패)'''으로 총 8개국이다. 반면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팀은 '''아랍에미리트, 스위스, 튀니지, 그리스, 코트디부아르, 일본, 우루과이, 폴란드, 세네갈'''로서 우루과이와 일본에게는 2경기 3점, 나머지는 1경기 3점을 기록했다. 아직까지 1승을 거둔 팀에게 추가 승점은 얻지 못했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62년 조별리그 소련전 4:4 무, 2014년 조별리그 일본전 4:1 승으로 네 골이 최고기록이다. 소련전의 경우 야신을 상대로 4골을 몰아쳐 각국 언론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62년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전 0:5 패로 다섯 골이 최다기록이다.
콜롬비아 역시 남미치고는 축구에 늦게 발을 디뎠는데, 전통적으로 야구의 열기가 강한 나라여서 그랬던 것으로 추측된다[25] . 늦게 참여한 것 치고는 월드컵 진출은 빨라서 1962 칠레 월드컵에 처음으로 올라갔는데, 당시 레프 야신이 버티던 소련과 '''4:4'''라는 기록적인 무승부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동구권의 강호 유고슬라비아, 같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에 연패하면 1무 2패로 광탈했다. 하지만 이 때 월드컵 진출에 힘입어 1968년에 '''1986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는데''', 원체 콜롬비아란 나라가 경제가 안습하고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여서인지 준비를 거의 못하다가 '''대회를 4년 앞두고 개최권을 반납했다'''. 결국 그 티켓은 멕시코가 가져갔고 1986년 월드컵은 멕시코의 월드컵이 되었다. 눈물나게도 정작 자기들이 개최했어야 할 1986년 예선에서 떨어져 본선을 밟지도 못했다.
그나마 1986년 콜롬비아(포기 전) 월드컵을 앞두고 유소년 육성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그것이 결실을 이뤄 발데라마, 이기타, 랑콘 등의 스타 선수가 탄생하고 다음 대회인 1990년에 28년만의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서독, 유고슬라비아, UAE와 한 조를 이뤄 승점 자판기 UAE를 잡고 대회 우승국 서독과 비기며 16강에 진출에 성공했으나 돌풍의 팀 카메룬에게 연장전 끝에 1:2로 패하며 일찍 짐을 싸야했다. 다음 대회인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는 전력이 급상승했는데 80년대 유소년들이 최절정에 올라있던 때였고 남미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2승으로 잡고 조1위로 본선에 직행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원정에서 5:0으로 탈탈 털어버렸다'''. 전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콜롬비아로 집중되고 펠레마저 콜롬비아가 우승후보다. 브라질은 월드컵 갈 자격도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조편성도 좋았고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으나 결과는 1승 2패 광탈. 미국전에서 자책골을 넣은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고국에 와서 총살당할 정도로 정말 암울한 결과였다.
다음 대회인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1승 2패 탈락. 이후 16년간 월드컵에서 모습을 비추지 못했는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코파아메리카 우승도 하고 우루과이에 골득실 차로 밀려 아깝게 본선진출에 실패하는 등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후 10년간은 암흑기를 보내게 된다. 2014년 남미에서의 월드컵을 앞두고 화려하게 부활, 라다멜 팔카오를 앞세워 남미 2위로 일찌감치 본선에 올라 톱시드까지 받았다. 본선을 앞두고 팔카오가 부상으로 낙마해 전력이 불투명해졌으나 신성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하드 캐리했다.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라 수아레스가 없는 우루과이마저 지워버리고 8강에 진출, 홈팀 브라질에 아깝게 패배하며 콜롬비아의 월드컵 도전사에 최고의 발도장을 찍었다. 2014년 한 대회에서 쌓은 승점이 나머지 네 대회를 능가할 정도다. 더욱이 뛰어난 활약을 했던 선수들 대부분이 아직 20대 초중반이어서 다음 대회가 더 기다려지는 팀 이였지만 막상 2018년의 첫 경기에서 다시 만난 일본한테 어이없는 실수로 졌다가 폴란드, 세네갈을 이기고 16강에 진출했지만 축구종가 잉글랜드에게 승부차기로 패해 16강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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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넣을 때마다 모든 선수들이 동작을 맞춰가며 춤을 추면서 세레모니를 하여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정말 오랫만에 보인 단체 골 세레모니는 콜롬비아 대표팀의 아픈 과거를 알고 있는 관중들에게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사후 거의 20년만에 보게 된 콜롬비아 선수들의 해맑은 모습은 '''20년이라는 세월동안 고통받았던 콜롬비아 축구 선수와 관계자들의 한풀이이자 씻김굿'''처럼 보여질 수밖에 없어 "그래, 너희 맘 안다. 그러니 실컷 즐겨라."는 반응과 함께 뭉클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5.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5.3. 코파 아메리카
'''CONMEBOL 코파 아메리카 역대 순위 : 7위'''
5.3.1.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5.3.2. 코파 아메리카
5.4. 골드컵
[1] 스페인어[2] 콜롬비아 커피 문화 경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될 정도의 수준이다.[3] 이거 가지고 펠레의 저주 운운하는데 이때의 콜롬비아는 전대회 준우승, 전전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를 원정에서 5-0으로 발라버리고 본선에 나선 팀으로 발데라마, 링콘, 아스피리야 등 쟁쟁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립서비스라는걸 감안해도 충분히 강력한 팀이었고 그렇게 허무하게 탈락할거라는 예상은 적었다.[4] 국내에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지만 외국에서는 거의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감독이고 콜롬비아 축구사에서는 거의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1986년 처음 감독직을 시작한 이후 1년뒤인 1987년쯤에 콜롬비아 대표팀 감독직에 취임하며 콜롬비아 대표팀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나서서 자국의 '''월드컵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가 1993년, 다시한번 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며 대표팀의 본선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본선에서 콜롬비아는 이글에서 서술한 내용처럼 충격적인 예선탈락을 겪었고 감독이었던 그도 역시 국내 입국을 하지 않은채 한동안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대회 후 마루라나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코스타리카, 페루 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다가 2001년에 다시 취임해 콜롬비아 대표팀 감독직에 나섰고 그해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해 대표팀의 '''사상 첫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다. 그 후 여러 팀들과 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그는 2011년 알 나스르 감독직에 취임하였지만 1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5] 물론 펠레의 저주가 한몫 한것은 있다고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감독직이 빈번하게 교체되었던 점도 어느정도 볼만한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앞에서 나왔듯이 콜롬비아는 최정예 선수들이 즐비할 정도로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과시했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동안 무려 '''3명'''의 감독이 뒤바뀌며 나름대로는 혼란스럽게 나갔었던 팀이었다. 어느정도 였냐면 콜롬비아는 1990년 마투라나 감독이 물러난 이후 1991년과 1992년도에 각각 다른 감독을 선임해 나갔지만 길게는 1년밖에 가지 못한 채로 단기 운명에 접어들었고 더이상 안될 것 같은 느낌에서 였는지 1993년, 이전에 대표팀을 맡았던 마투라나 감독을 재선임하며 월드컵에 나섰지만.. 예선탈락의 아픔을 겪으며 아쉬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쉬움은 아쉬움 일뿐.. '''3년동안 3번의 감독이 선임되었고 2명이 물러난걸 생각한다면''' 많은 적응과 시간이 소비되는 축구 특성상 한계일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분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은 예선 탈락이라는 문제점을 낳았으니 이것도 뭐라 할말은 못할 부분인 듯 싶다. 그나마 대단한 것이라면 저 기간동안 무패행진을 한 전력이 있어서 나름대로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6] 물론 우승까지는 오버 수준이지만... 그래도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콜롬비아 선수들은 역대급으로 평가받았던 1994년 미국 월드컵때와 '''비슷한 수준일 정도'''로 절정기에 다달은 선수들이 즐비하였다. 대표적으로 앞에서 언급된 하메스를 비롯해 후안 콰드라도, 후안 카밀로 수니가, 파블로 아르메로, 크리스티안 사파타, 프레디 구아린, 빅토르 이바르보, 잭슨 마르티네스, 카를로스 바카, 그리고 골키퍼 였던 다비드 오스피나 등이 포진될 정도로 실력면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이들 선수들은 모두 유럽에서 활약중인 해외파 선수들이어서 실력면에서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때문에 일부 팬들도 '''개최국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이겼더라면 충분히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그래도 현재까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걸 본다면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는 부분인 점은 맞다고 볼 수 있다.[7] 한국이 남미 팀과의 A매치에서 우세를 보이는 팀은 콜롬비아,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단 4팀 뿐이다. 그나마도 베네수엘라는 단 1번 붙어서 1번 이겼다.[8] 이런 비슷한 경우를 남미 팀에서 하나 더 꼽자면 파라과이가 있다.[9] 당시 한국의 득점자는 김판근과 황선홍이었다.[10] 거기다가 이 경기는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올림픽 대표팀'''이 대리출전한 경기였고, 콜롬비아는 호세 레네 이기타를 비롯한 '''1.5군이 출전'''한 경기였다![11] 당시 한국의 득점자는 황선홍(2골), 김도훈, 박태하였다.[12] 당시 한국의 득점자는 정경호였다.[13] 이 경기는 콜롬비아 입장에서는 형편없는 졸전이었는데, 신태용호에 나와 있듯이 상당히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연속으로 해서 비아냥을 받은 건 덤이었다. 심지어 콜롬비아의 기대주라고 불리우는 하메스 로드리게스마저 반칙을 유도하려는 할리우드 액션을 보이는 등 추태를 보였다. 그 덕택에 로드리게스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던 국내 팬들의 팬심이 싸늘하게 식었다고... 콜롬비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매너도 성적도 모두 패한 상처뿐인 경기가 되어 버렸다.[14] 당시 한국의 득점자는 손흥민, 이재성이었다.[15] 콜롬비아 4승, 파라과이 2승, 브라질 1승, 에콰도르 1승, 베네수엘라 1승, 우루과이 1승, 볼리비아 1승.[16] 한국이 남미 팀을 상대로 A매치 첫 승리를 기록한 상대 또한 콜롬비아였으며, 1999년 3월 28일 친선경기에서 한국이 브라질을 1 : 0으로 격파하기 이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유일하게 콜롬비아만이 한국을 상대로 A매치에서 패배한 남미 팀이었다.[17] 두 번째 도전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 유고슬라비아와 우루과이에 연패하며 광탈했다. 다만 레프 야신이 버티는 소련에 '''4:4''' 무재배를 일궈냈다.[18] 원래 이 대회 개최국이 콜롬비아였다. 1968년 총회에서 개최티켓을 따냈지만 대회를 4년 앞두고 경제문제를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 결국 멕시코에서 대회가 치뤄졌고 콜롬비아는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19] 28년만의 본선에 올라 대회 우승국 서독과 비기고 UAE를 이기는 등 선전했지만 16강에서 돌풍의 팀 카메룬에게 1:2로 패하며 짐을 쌌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8강에 오르기 전까지 유일하게 토너먼트에 진출한 대회이기도 했다.[20]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원정에서 5:0'''으로 대승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본선에 직행, 펠레에게 우승후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었다. 조편성도 미국, 루마니아, 스위스와 한 조가 되어 16강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나 루마니아와의 첫 경기에서 1:3패, 가장 전력이 약했던 홈팀 미국에 1:2로 패하며 광탈했다. 이 경기에서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자책골을 넣었는데, 이 골만 아니었으면 마지막 경기에서 스위스에 2:0으로 이겼으므로 이탈리아를 제치고 3위로 16강에 올라갈 상황이었다. 결국 귀국 후 나이트클럽에서 광팬에게 총을 맞고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마피아의 개입이라는 설도 있었긴 했는데 어쨌든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으며 콜롬비아 축구 최악의 흑역사다.[21] 전 대회의 부진 때문에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튀니지를 이겼을 뿐 루마니아, 잉글랜드에 모두 패하며 또다시 탈락했다.[22] 16년만의 본선에 올라 사상 처음으로 톱시드를 받는데 성공, 그리스 코트디부아르 일본 우루과이를 모두 이기며 8강까지 오르면서 콜롬비아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전 네 개의 대회에서 받은 승점보다 이 대회에서 쌓은 승점이 더 많을 정도.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6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고 특유의 댄스 세레모니가 화제가 되었다.[23]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24] 승점/경기횟수를 나눈 점수[25] 지금은 축구의 위상에 많이 밀리지만, 그래도 야구의 저변도 무시하지 못한다. 카리브해와 맞닿은 북부 지역에서는 야구의 인기가 여전하며, 메이저리그에도 많은 선수들이 진출해서 스타가 되었다.[26] <ref>이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으며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가장 늦게 참여한 남미 국가가 되었다. 순위는 5위로 하위권에 랭크되었다.</ref>[27] 코파아메리카 역사상 유일하게 지역예선을 치뤘던 대회였고, 칠레에 1무 1패(총합 2:5)로 밀려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28]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으며, 이 대회부터 풀리그가 아닌 조별리그+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상 처음으로 결승전까지 올라 페루와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했다. 4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것은 이 대회가 처음이었다.[29]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다.[30]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다.[31] 20년만에 개최국을 다시 선정하기 시작했으며, 아르헨티나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12년만에 4강까지 올라 3·4위전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홈팀)를 꺾고 3위를 차지했으며, 1년 전 가지 못했던 월드컵(원래 콜롬비아 개최였다가 자진 포기했었다. 그리고 본선에도 가지 못했다.)의 한을 씻었다. 콜롬비아가 본격적으로 남미의 다크호스로 주목받는 계기가 된 대회이다.[32] 참가국을 12개로 확대해 타 대륙팀을 초청하기 시작했고, 첫 초청국은 멕시코와 미국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토너먼트를 8강까지 확대하면서 지금과 같은 대회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두 대회 연속 4강에 오르면서 94 미국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5:0으로 꺾은게 이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 월드컵 우승후보로까지 부상했다.[33] 죽음의 C조에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에콰도르를 상대로 3전 전승했다. 3전 전승으로 토너먼트에 오른 것은 사상 처음이었지만 칠레에 2:3으로 지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34] 1945년 첫 참가 이후 56년만에 처음으로 대회를 개최했으며, 여기서 6전 전승 무실점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비록 최강 아르헨티나가 빠지고 브라질이 부진의 늪에 빠져 온두라스에게 지면서 두 나라와 만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쉬운 대진(칠레,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페루, 온두라스, 멕시코)이긴 했지만 전승 + 무실점 우승은 브라질도 해내지 못한 기록이다. 전승 + 무실점 우승은 코파아메리카 역사에 1917년 우루과이, 1921년 아르헨티나, 그리고 2001년의 콜롬비아 뿐이다. 90년대부터 이어진 콜롬비아의 마지막 전성기였으며 이 때 이후로 10년간 침체기를 맞았다. 여담이지만 성남 일화와 FC 서울에서 활약했던 미드필더 마우리시오 몰리나가 당시 우승멤버 중 하나였다. 당시 21세[35]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에 패하며 조 3위를 차지했고, 1989년 이후 18년만에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첫 경기에서 파라과이에 0:5로 대패하는 등 심각하게 부진했다.